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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발발(勃發)을 예견한 구영(具塋)

  • 작성자관리자
  • 등록일2010-07-06 00:00
  • 조회수1606

구영(具塋)선생은 1584년(宣祖12년) 고산현(高山縣)에서 능성(綾城)구씨 대윤(大倫)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자(字)는 영연(塋然)이고 호(號)는 죽유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때의 공로로 호종공신(扈從功臣)에 봉해졌고,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과 회인현(懷人縣) 현감(縣監)을 지낸 인조(仁祖)때의 문관(文官)이다.
문원공(文元公)밑에서 학문닦아선생은 당시 학자로서 이름을 날리던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닦았다. 그는 말과 행실을 조심스럽게 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스승인 김장생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으며, 후에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열심히 학업에 정진한 결과 선생은 29살 되던 해인 1612년(光海君 4년)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1618년(光海君 10년)에,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廢)하자는 논의가 간신배들에 의해 대두되자, 전주(全州)에 살던 유응원(柳應元)이라는 사람이 글을 지어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선생은 분격하여 유생들을 모아 향교(鄕校)에 들어가 이에 반대하는 글을 지어서 인목대비를 폐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규탄하였다. 선생의 형은 선생의 행동이 옳다고 긍정했으나, 그의 친척들은 모두 나서서 이같은 행동으로 말미암아 닥쳐올 화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말렸다. 일이 이처럼 되자 선생은 할수 없이 더 이상의 행동은 삼가게 되었으나, 유응원의 지지문을 구해 불을 살랐다. 

임진강 건너오는 쥐떼보고 병자호란 예견 1630년(仁祖 8년)에는 사과(司果)벼슬을 받았다. 그 해는 수 많은 쥐떼가 임진강을 건너오는 이변이 발생했다. 선생은 이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생물인데 간지(干支)로 보면 지지(地支)중의 자(子)에 해당된다. 그리고 쥐떼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건너왔는데, 남(南)이라는 방위는 천간(天干)중에서 ‘병(丙)’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쥐떼가 임진강을 건너온 이변은 아마도 병자(丙子)년에 오랑캐의 내침(來侵)이 있으리라는 징조가 아니겠는가?”라고 예견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6년후, 병자년인 1636년에 그가 예견한 바와 같이 외란(外亂)이 발생하였으니 이것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이었다. 

병자년이 되어, 호란이 일어났는데 소식에 접한 선생은 즉시 집안일을 정리하고 나서 의병장 정홍명(鄭弘溟, 1592~1650)의 막하에 들어갔다. 정홍명은 유명한 정철(鄭澈)의 아들로서 선생과 같이 김장생의 제자였다. 
선생은 정홍명의 막하에서 군무에 힘쓰면서도 항상 위기에 처한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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